은행 퇴직연금의 배신

올해 들어 금융권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는 연금자산이다. 고령화에 저성장,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연금자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2017년 개인형퇴직연금(IRP) 가입대상이 자영업자와 특수 직역연금가입자(공무원·교직원·군인·별정우체국직원연금)로 확대된 영향도 크다. 전업주부 등을 제외하면 사실상 전국민이 IRP 가입대상이 되면서 금융회사 입장에서는 새로운 연금고객을 늘릴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IRP는 절세혜택이 주어지는 세액공제상품이라서 강제저축의 성격을 띄고 있다. 연금저축 400만원, IRP 계좌 300만원까지 최고 16.5%(총급여 5500만원 이하)의 세액공제 혜택이 있다. 연금저축과 IRP에 모두 700만원을 납입하면 연말정산으로 115만5000원을 돌려받을 수 있다. 총급여 5500만원 초과시에도 92만4000원의 세금혜택이 있다. 연말이면 가입자가 자연스럽게 늘어난다.


은행권의 연금시장 공략 의지는 확고하다. 신한은행은 그룹 차원의 퇴직연금 사업부문을 별도로 신설했다. 퇴직연금 미래설계 가이드를 발간하고, 그룹 차원에서 4년 이상 가입한 고객의 누적수익이 0원 이하인 경우 수수료를 면제하는 파격적인 혜택도 제공했다. 국민은행도 WM부문 산하에 연금본부와 연금기획부를 신설해 연금 영업 강화 의지를 내비쳤다. 하나은행은 올해 초 은행권에서 처음으로 연금사업본부를 신설했고, 지난 6월에는 본부를 연금사업단으로 격상했다. 하나은행은 함영주 전 행장 시절부터 퇴직연금 사업을 중점 사업으로 추진했고, 올해 들어서는 퇴직연금 성장률이 은행권 최고를 기록했다.


이를 반영하듯 퇴직연금 점유율에서도 은행은 독보적이다. 사업자 기준으로 은행의 점유율이 50.7%(2018년 기준)으로 가장 높다. 사업자별 기준으로도 삼성생명을 제외하면 신한은행(2위) 국민은행(3위) 기업은행(4위) 하나은행(5위) 우리은행(6위) 등 은행이 독식하고 있다.


그렇지만 은행의 퇴직연금 수익률은 형편없다. 1년 수익률은 물론이고 장기수익률에서도 최하위에 머물러 있다(10년 수익률 기준, 손해보험 3.30% 생명보험 3.21% 금융투자 3.78% 은행 3.08%).


은행의 고객 관리도 허술하기 그지없다. 기자는 지난달 30일 A은행의 한 지점에서 IRP계좌의 계약이전을 신청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펀드 환매를 진행하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해당 지점 직원은 일본의 수출규제 발표로 시장이 폭락한 상황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펀드 환매 얘기를 건넸다. '하반기 인사이동으로 정신이 없었고, 계약이전 금융회사와 연락이 닿지 않았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퇴직연금은 은퇴소득의 중요한 재원이다. 15년 이상 안정적으로 가져가야 하는 초장기 자산이다. 그렇기에 고객은 퇴직연금사업자를 믿고 자산운용에 따르는 수수료와 신탁사업자에게 지급하는 자산관리 수수료를 매년 어김없이 내고 있다.


한 시중은행 행장은 최근 "현장의 영업방향을 정하는 것은 KPI(Key Performance Indicator)이고, KPI의 Key는 고객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행장 취임식에서도 "진정한 1등 은행이 되기 위해서 첫 번째로 기억해야 하는 가치는 바로 고객"이라고 '고객 중심', '고객 퍼스트'를 강조했다. 그런데 현장의 은행원은 퇴직연금 가입자의 수익률에는 무관심하다. 충격을 넘어 배신감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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