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최보람 기자] 내년으로 예상됐던 11번가 기업공개(IPO)가 경우에 따라 1~2년 정도 미뤄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현재 주력인 오픈마켓 외에 신성장동력사업이 온전히 자리 잡아야 높은 몸값을 기대할 수 있는 만큼 IPO 시점에 큰 의미를 둘 상황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16일 이커머스업계에 따르면 11번가는 대외적으론 내년을 상장 목표로 하되 전제조건에 '타 업체와의 차별화 전략 성과도출'을 내걸었다. 이는 아마존 글로벌 스토어, T우주 등 11번가의 신규 서비스가 시장에 안착하고 나아가 회사의 간판사업이 될 때를 의미한다.
회사가 상장시점을 탄력적으로 잡은 것은 ▲투자자가 엑시트(투자금회수)에 목메는 상황이 아니고 ▲곳간 사정이 풍족한 데다 ▲기업가치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우선 11번가의 기업가치가 흔들리고 있는 점은 부담이다. 11번가는 출범 후 한동안 눈길 끄는 성장세를 이어갔지만 최근 들어선 업계 전체 성장률에도 못 미치는 거래액 증가율을 기록 중이다. 2010년대 중반 대규모 적자를 낸 이후 손익분기(BEB)를 맞추는 데 집중한 결과다.
보수적 경영은 11번가가 언제든 흑자전환할 수 있단 시그널을 준다는 점에선 호재다. 그러나 IPO의 핵심 재료인 '성장성' 추구에서는 부정적으로 받아들여 진다. 11번가가 안정성을 추구하는 사이 쿠팡과 네이버쇼핑 등 배송 경쟁력·포털 지배력을 갖은 사업자가 신무기를 앞세워 이커머스업계 1·2위 사업자로 발돋움했다. 11번가는 중위권으로 밀려났다. 11번가가 해외직구(아마존 글로벌 스토어)를 적극 육성하고 구독 경제인 'T우주'에 집중하는 것도 기존 오픈마켓 만으론 쿠팡·네이버를 잡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외부 투자자들이 IPO 시점 연장을 기다려 줄 수 있단 점도 11번가에는 긍정적 요소다. 애초에 11번가 상장설은 투자자들의 엑시트 고려 차원에서 시작됐다. 11번가는 2018년 재무적투자자(FI)인 나일홀딩스로부터 5000억원(지분 18.18%)을 유치할 당시 투자자에게 5년 내 엑시트 기회를 주기로 했다. 이를 두고 시장에서 11번가가 투자자에게 대규모 현금을 쥐어줄 재료로 IPO를 꼽으면서 회사의 예상 상장시점이 2023년으로 굳어졌다.
이에 대해 11번가는 협의에 따라 충분히 IPO 시점이 바뀔 수 있단 반응을 보이고 있다. 기업가치가 제대로 평가될 시점에서 IPO를 진행해야 대규모 엑시트를 노리는 FI입장에서도 좋다는 논리다. 여기에 11번가 주주구성을 보면 모회사인 SK스퀘어가 지분 80.26%를 보유 중이며 FI 지분은 20%가 채 안 된다. 동종 업체인 컬리 등과 비교해 투자자들의 눈치를 덜 볼 수 있다.
11번가는 당장 IPO를 통해 대규모 현금을 유입해야 할 필요도 적은 사업자이다. 쿠팡과 컬리 등과 같이 대규모 비용이 드는 직매입 및 직접 배송 서비스를 주력으로 하지 않고 있는 터라 비교적 현금유출 우려가 적다. 또한 2020년 말 기준 11번가의 순차입금은 마이너스(-)4481억원으로 사실상 무차입 경영을 하고 있다. 신규사업을 키울 시간은 넉넉하다.
11번가 관계자는 "현재도 내년을 상장 목표로 잡고는 있다"며 "다만 아마존 글로벌 스토어가 본격 성장할 시점이 내년이나 내후년으로 예상되고 있고 신규 서비스가 두각을 나타내기 전까진 기존 오픈마켓 사업에 대한 평가가 크게 달라질 순 없단 점에서 IPO 시점을 예단하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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