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류세나 기자] 삼성을 둘러싼 먹구름이 그룹 경영 전반으로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의 국정농단 재판이 그간 삼성의 독보적 위협 요인이었다면, 최근엔 검찰의 삼성바이오로직스(삼바) 분식회계 및 증거 인멸 혐의 조사로 리스크 범위가 최고경영진으로 확장되고 있는 모양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중 무역전쟁이 ‘화웨이 리스크’로 번지면서 삼성의 핵심인 삼성전자는 양국 사이에 끼인 샌드위치 신세로 전락했다.

재계는 일년에 두 번씩 열리는 삼성전자의 글로벌 전략회의 규모가 이례적으로 대폭 축소된 것 역시 삼성의 위기 시그널로 읽고 있다.

◆ 위기 속 회의 축소…경영시계도 주춤

14일 삼성전자에 따르면 지난 13일 IT·모바일(IM) 사업부를 시작으로 ‘글로벌 전략회의’에 돌입했다. 매년 6월과 12월 두 차례 열리는 이 행사는 삼성전자 수뇌부들이 한 자리에 모여 지난 반기 성과를 점검하고 다음 반기 경영전략을 짜는 자리다. 미래 방향성을 결정짓는 자리라는 점에서 그룹 내에서도 ‘글로벌 전략회의’가 갖는 의미가 상당하다.

그러나 올 상반기 회의의 모습은 예년과 사뭇 다르다. 400~500여명에 달하던 참석 인원수는 100여명 남짓으로 대폭 줄었고, 소비자가전(CE) 부문은 아예 회의를 갖지 않기로 했다. 대신 최고 경영진 출장 일정에 맞춰 출장지에서 지역별 현안을 논의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글로벌 경영 불확실성이 최고조지만 사업 방향을 결정짓는 전략회의는 오히려 축소된 셈이다.

삼성전자 측은 회의 규모를 줄인 배경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잇단 검찰수사로 컨트롤타워가 위축된 상황에서 열리는 전략회의가 제 기능을 하기 어려울 것이란 경영적 판단이 반영된 결과로 보고 있다.

검찰은 삼바 수사와 관련해 현재까지 삼성전자 부사장 등 삼성 관계자 8명을 구속하고, 이 부회장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정현호 TF 사장도 소환 조사한 상태다. 법조계에서는 정 사장의 소환으로 이 부회장의 검찰 수사도 임박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아울러 삼바 검찰 조사로 인한 임원 소집 회의에 대한 심리적 압박도 이번 글로벌 전략회의의 규모를 축소한 배경으로 꼽힌다.

삼성그룹은 올 들어 공식석상에서 기업 위기론을 수차례 거론하고 있다. 지난 10일 언론에 전달한 검찰수사 관련 2차 입장문에서는 “(추측성 보도들로) 회사 경영에 집중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직접적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삼성 내부 한 관계자는 “어떤 이유로든 임원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는 것 자체에 대한 부담이 생긴 것 같다”며 “최근 한 방송사에서 지난해 이재용 부회장 주재 삼바 경영진과의 사업회의에 대해 증거인멸 목적의 회의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하면서 더욱 자세를 낮추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 미·중 무역전쟁 격화…둘 사이에 끼인 삼성전자

외부 상황도 삼성의 위기론에 힘을 보태고 있다.

미국의 중국 화웨이 제재로 삼성전자 스마트폰 점유율 확대가 기대되고 있긴 하지만 반도체 부문으로 보면 화웨이도 고객사 중 한 곳이다. 삼성으로서도 매우 난감한 상황이다. 특히 최근 중국 정부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을 포함한 글로벌 기업들을 불러 모아 미국 주도의 화웨이 제재에 동참할 경우 불이익을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은 상태라 삼성은 미국과 중국 양국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다.

사실 화웨이 단일 기업으로는 삼성전자 내에서 매출 비중이 큰 파트너는 아니다. 하지만 뒷배에 있는 중국은 1분기 기준 삼성전자 전체 매출의 25%인 8조3340억원을 낸 빅마켓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현재는 삼성전자의 역량을 최대한 끌어 올려 최적의 판단을 내려야 하는 시점”이라며 “그룹 컨트롤타워 기능 재건이 시급하다”라고 말했다.